이야기에 질문을 던지는 ‘기술’, 프로젝트 <반(Bahn)> 글_조형빈(웹진 《춤:in》 편집부)

기술의 변화와 예술
최근 기술을 발달은 눈부실 정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아주 가깝게는 휴대폰으로부터 시작해서, 지난 세대가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말을 알아듣는 가전제품까지 기술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을 바꾼 기술들은 예술 작품 안으로 들어와 기존의 예술이 지니고 있던 예술의 매체적 특성 자체를 뒤흔들고 그것을 새롭게 정의내리게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청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주관으로 열린 제 9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에서는, ‘기술 혁신 시대의 예술’이라는 주제로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논의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의 기술들 속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리고 예술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이 심포지엄을 통해 이야기 나눈 바 있다.
그렇다면 공연 작품의 측면에서, 기술은 퍼포먼스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논의가 있기 훨씬 전부터, 기술(도구)의 발전은 새로운 예술들을 끊임없이 탄생시켜 왔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부분의 경우 그 혁신성으로 인해 기존의 예술들이 부침을 겪을 것이라(혹은 몰락할 것이라) 예견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기술들은 기존의 예술을 몰락시키기보다 아예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경우가 많았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기술은 존재하는 예술 그 자체를 흔들기보다, 거기에 새로운 예술을 더해 다른 것을 만들어나간다는 뜻이다. 다양한 공연예술 작품들은 이미 그 안에 기술적인 부분들이 상당히 들어가 있지만, 그 외연을 무대 밖으로 확장시키는 유연함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퍼포먼스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은 어쩌면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은 기술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공연의 형태를 해체하고 바꿔치기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프로젝트 <반>에서는 이런 예술의 매체성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만한 기술들이 작품으로 틈입하는, 바로 그 찰나를 관찰할 수 있었다.
2월 9일과 10일 양일간 진행된 프로젝트 <반>은 최근 우리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된 여러 기술들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공연이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이용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을 관객이 돌아다니면서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는, 특별한 형태를 띤 공연이었다. 이 공연의 무대는 극장이나 고정된 장소가 아닌 세운상가 전체였기 때문에, 앱의 가이드를 따라 관객이 직접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보통 상호작용의 개념이 들어간 예술 작품의 경우 관객의 체험을 강조하기 위해 그 구조가 단순하기 마련인데, 프로젝트 <반>은 세운상가 일대를 모두 무대로 삼고 거기에 다양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관객이 작품을 보다 깊이있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운상가를 탐험하는 프로젝트 <반>
공연은 스피커와 거울이 달린 헬멧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얼마 전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리모델링 된 세운상가 꼭대기 층 ‘서울옥상’에서 헬멧을 나누어받고, 관객이 각자의 스마트폰을 켜서 거울이 붙어있는 헬멧과 연결하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진행된다. 헬멧은 시 야를 가려 관객이 때때로 현실과 차단되어 스토리 안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헬멧 뒤에 달린 스피커가 일정 장소에 도착하면 음악을 재생하여 공간의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켜 주었다. 특히 앱은 이 공연의 필수요소로, 관객은 예약 시 제출하였던 이메일 주소로 스마트폰 앱의 다운로드 링크를 사전에 받게 된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한 일종의 숙제인 셈인데, 메일에 적혀있는 안내를 따라 앱을 관객 본인의 스마트폰에 설치해야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안내가 사전에 공지되기도 했다.
장비가 모두 준비되고 앱을 실행시키면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앱에는 기본적으로 메세지와 지도가 표시되는데 메세지 창에는 ‘반’이 보내오는 메세지가, 지도에는 관객 본인의 현재 위치와 앞으로 이동해야할 다음 장소가 GPS를 통해 표시된다. 관객이 앱을 켜면 ‘반’이 친근한 사람에게 말을 걸듯 메세지를 보내오면서 이동할 곳을 알려준다. ‘반’은 자기를 찾아달라며 메세지를 보내오고 이 소녀를 찾아가는 과정에 QR 코드와 거울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 360도 VR영상 등의 다양한 기술이 동원된다.
소녀의 메세지를 따라 장소를 이동하다보면 세운상가 곳곳에 기술 장치들과 더불어 ‘무대적 장치’들이 함께 놓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벽에 붙어있는 종이이기도 하고, 직접 앉아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예 방 하나를 통째로 무대세트로 구성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치들은 첨단의 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지만, 세운상 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시간들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관객이 진짜 가상의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이를 테면, 옥상에서 내려와 매점으로 향하다보면 철문에 QR 코드가 붙어있고 메세지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의 추억의 장소인 매점 앞에 종이 더미에 둘러쌓인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고 있는 남자가 앉아있는 식이다. 매점은 공연의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매점이지만, 앉아서 글을 적고 있는 남자는 극적 연출의 일부다. 이렇게 실제 공간과 극이 혼재되고, 더불어 계속해서 ‘반’이 보내오는 메세지들이 관객이 극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도록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략)


프로젝트 <반>은 지난해 10월 한-영 교류행사인 ‘커넥티드 시티-플레이어블 시티’에서 테스트버전으로 초연되었던 것을 발전시킨 공연이다. 또한 앞으로도 작품을 더 발전시켜 해외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도 한다. 이 흥미로운 ‘내러티브의 실험’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또 어떤 질문을 더 던질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된다.
[글_조형빈(웹진 《춤:in》 편집부)]
본 기사의 저작권은 (주)온투업에 있지 않음을 밝힙니다.
[출처] - 서울문화재단 - http://choomin.sfac.or.kr/zoom/zoom_view.asp?type=out&zom_idx=317&div=